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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추천 워드 클라우드 생성기들 Word Cloud Generators새 창 열림
작성자 냉정한토끼29
작성일 26-09-1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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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지 않고 이야기하기NHK '일요 미술관'의 장수 비결 ​게스트가 예술 작품 한쪽에 두고 자신의 느낌·경험을 말하는 방식설득하는 방식에 대한 좋은 사례일본 공영방송 NHK의 인기 프로그램 ‘일요미술관’의 한 장면. 1976년 첫 방송을 시작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으며, 지난 3월 ‘주간 파인아트 TV프로그램 최장 방송’ 부문에서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랐다. /NHK ONE 지​난 2026. 3월 일본 언론은 NHK의 ‘일요미술관’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주간 파인아트 TV 프로그램 최장 방송’ 부문에서 기네스 세계기록으로 공식 인정됐다고 보도했다. 1976년에 시작해 올해 방송 50주년을 맞이했으니, 대단한 기록임에 틀림없다. 종목이 워낙 특이해서 기존 기록 보유자가 누구인지 검색해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아마 NHK 측이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기네스 측이 이를 검수해 인정한 방식일 것이다. 요즘 기네스 기록은 단순한 ‘세계 최고’의 발견이라기보다, 기관과 기업이 자신의 성취를 공인받고 알리는 홍보 장치로도 자주 활용된다. 일본은 1960년부터 컬러TV 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졸 신입사원 월급이 많아야 1만5000엔이던 시절, 52만엔이던 21인치 컬러TV는 대중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거치면서 컬러TV가 대중화되었고, 1975년에는 컬러TV 보급률이 90%에 달했다. 전후 복구를 발판 삼아 1955년부터 1973년까지 연속 호황을 누린 일본은, 성장이 무뎌지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문화적 욕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일요일 아침, 컬러TV로 한 시간씩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일요미술관’의 출발은 시기적으로 적절했다. 1976년에 시작했지만, 뿌리는 더 깊다. 1960년대 초반 NHK의 기획자들은 ‘세계의 미술가’, ‘TV미술관’, ‘일본의 미’ 같은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미술 교양’을 공영 방송의 중요한 역할로 보기 시작했다. 1965년 처음 등장한 ‘일요미술관’은 시장이 무르익기를 기다렸다가 1976년에 본격 론칭했고, 그것이 50년 이상 이어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나와 ○○”이라는 포맷도 독특하다. 게스트가 등장해 자신이 설명하고 싶은 작가에 대해 자기 느낌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1980년 2월에는 오카모토 타로가 피카소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카모토 타로는 ‘예술은 폭발이다’라는 말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예술가다. 그가 추상 예술을 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젊은 시절 파리에서 처음 본 피카소의 정물화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스튜디오 한쪽에는 가로 약 7.77m, 세로 3.49m의 ‘게르니카’가 실물 크기로 펼쳐져 있었다. 그 앞에서 오카모토 타로가 자신의 인생을 바꾼 피카소를 말한다. 이보다 더 텔레비전다운 미술 체험이 또 있을까. 같은 해 9월에는 오에 겐자부로가 프랜시스 베이컨에 대해 이야기했다. 노벨문학상 작가가 젊은 날부터 동경해 ‘평생 가장 소중한 화가’라고 부른 사람의 작품을 스튜디오에서 실물로 대면했으니, 그날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을지 짐작이 간다. 같은 포맷으로 50년의 시간이 흘렀다. 기념으로 무언가 남겨야 하지 않을까. 전시회가 좋을 것이다. 도쿄예술대학 미술관에서 50주년 기념전이 열렸다. 전시의 존재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NHK가 의도했든 아니든, 기네스 인증은 훌륭한 홍보 장치로 작동했다. 2026년 3월 22일 기네스 인정, 3월 27일 50주년 기념전 취재회에서 공식 수여, 3월 28일 전시 개막. 기네스 수상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전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시회 도록에는 50년·2500회 방송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도쿄 전시는 6월 21일에 끝나지만, 가을에는 시즈오카, 겨울에는 오사카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일요미술관’이 50년 동안 해온 일은 미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미술 앞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좋은 제품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아무리 “좋다”고 가르쳐도 사람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증언이다. 그 제품 앞에서 누군가 자기 경험을 말할 때, 비로소 마음이 열린다. ‘일요미술관’의 50년은 미술 프로그램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오래가는 콘텐츠가 사람을 설득하는 방식에 대한 훌륭한 사례다. - 신현암 팩토리8 대표​미술품도 집이 필요하다​작​품을 지키는 나라가 문화강국이다. 대한민국 미술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K아트의 조명 뒤편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다. 평생 창작에 매진한 원로 작가와 작고 작가의 작품들이 갈 곳을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술가에게 60대 이후는 작가적 역량이 완숙기에 접어드는 동시에 미술사적 궤적을 정리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공립 미술관이 모든 작품을 수용할 수 없고, 미술은행과 정부미술은행의 한정된 예산만으로 수많은 수작(秀作)을 품기도 어렵다. 결국 작품의 보존과 관리는 작가와 유가족의 몫으로 남는다. 적절한 수장시설을 찾지 못한 작품이 창고나 열악한 공간에 방치되고, 작가 사후에는 보관 비용과 작품 정리 문제로 흩어지거나 폐기될 위험에 놓인다. 한 작가의 생애를 증언하는 작품과 자료가 사라진다면 개인의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미술사의 한 페이지가 지워지는 일이다. 이러한 자산의 손실은 작가 개인의 불행을 넘어 국가적 문화유산의 단절로 이어진다. 작가가 일생을 바쳐 구축한 예술적 성취가 체계적으로 기록되고 보존되지 못한다면 후대가 누려야 할 소중한 문화적 자양분 역시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민간의 선의나 유족의 희생에만 의존하기에는 보존 환경의 악화와 비용 부담이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이제는 국가 차원의 제도적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반면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미술관과 문화센터 등 새로운 문화시설을 짓는 데 수백억 원을 투입하면서도 정작 그 안을 지속적으로 채울 콘텐츠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건물은 있는데 보여줄 작품이 부족하고, 작품은 있는데 보관할 곳이 없는 역설이다. 두 문제를 연결하면 어떨까. 지역의 폐교나 사용도가 낮아진 공공시설을 '지역 거점 개방형 수장고'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자체가 일정한 심사 기준을 마련해 원로·작고 작가의 주요 작품을 위탁받아 전문적으로 보존·관리한다면 작가와 유가족의 부담을 덜면서 지역의 문화자산도 축적할 수 있다. 수장고의 문도 열자. 작품을 창고 깊숙이 넣어두는 대신 시민이 볼 수 있는 '오픈 스토리지'방식으로 운영하고 전시·교육 프로그램과 연결한다면 수장고는 또 하나의 미술관이 된다. 주민들은 일상에서 좋은 작품을 만나는 문화복지를 누리고, 지자체는 새로운 대형 건물을 짓지 않고도 지역의 문화 거점을 확보할 수 있다. 진정한 문화강국은 미술시장의 거래 규모나 유명 작가 몇 명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 시대를 살아낸 예술가의 작품을 공동체가 어떻게 기억하고 보존하는지가 그 사회의 문화적 깊이를 보여준다. 예술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작품은 살아남아야 한다. 버려질지 모르는 작품에 집을 마련하고 그 집의 문을 시민에게 여는 것. 이제 정부와 지자체가 '개방형 수장고'를 문화 인프라의 하나로 적극 검토할 때다. 작품을 지키는 일이 곧 우리의 미술사를 지키는 일이다. - 김윤섭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 이사장·숙명여대 겸임교수​‘나만의 그림’ 그리는 사람들“그림의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아동그라미에 꼭지 달면 예쁜 사과”​예능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서 방송인 전현무가 장난처럼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 일취월장 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돌 가수의 집에 저 혼자 그린 그림이 걸린 것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나도 그림을 그려볼까?” 명작을 남기겠다는 예술혼은 없지만, 미술 정규교육은 받아본 적도 없지만, 나만의 그림을 그리며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을 다해 대충 막 그리는 그림’으로 삶에 한 스푼의 변화가 생겼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제철의 기록,임애련 ‘놀공’ 대표 임애련 대표의 그림들. 화려한 색감을 좋아하는 그는 그림 도구로 발색이 좋은 오일 파스텔을 사용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게임 기반 문화교육 콘텐트를 제작하는 ‘놀공’의 공동대표이자 『여름엔 초코빙수』의 저자 임애련씨는 완경 경험 후 “나의 계절이 갔구나” 서글펐다고 한다. “올해가 가는 게 아까워 발을 구르다가 그 계절 그 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 그림을 시작했어요. 살다 보면 ‘완경’처럼 크고 작은 슬픈 일은 늘 있기 마련인데, 그 슬픔에 ‘완경’ ‘갱년기’ 등의 제목을 붙이는 바람에 더 슬퍼지는 게 아닐까 싶었죠. 하루 하루 즐기면 그만인 걸.” 오일 파스텔을 사서 그림 그리기를 마음 먹은 날 인스타그램에 계정(@oil_pastel88)을 만들고 매일 그림을 그려서 올렸다. “1년 열두 달 제철이 아닌 날이 없죠. 여름엔 초코빙수 먹고, 겨울에는 대봉시 먹고. 내가 그 계절을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 기록하는 게 일상의 루틴이 됐어요.”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사진 찍고, 퇴근 후면 매일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500일 만에 그림 에세이 『여름엔 초코빙수』를 출간했다. “창문에 그림을 붙여놓고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은 우피치미술관이 안 부러워요.(웃음)” TIP: 그냥 시작하자.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뇌뿐만 아니라 몸을 인식의 주체로 봤다. 몸이 지각하고 행동하며 환경과 상호작용 하는 것이라고. 운전을 하거나 자전거를 탈 때 몸의 익힘으로 활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시작하자. 하다 보면 하게 된다. 포스트잇 페인팅, 문 브로문 브로씨의 그림들. 7x7 사이즈 포스트잇에 직장생활, 여행지 에피소드 등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그린다. 을지로에서 일하는 평범한 엔지니어 회사원이자 『퇴근이 취미입니다』의 저자 문 브로(MOON Bro.)씨는 7×7 사이즈 포스트잇에 일상을 기록한다. “20년 전쯤 한창 외국 여행을 갈 때 포스트잇을 챙겨 갔어요. 스마트폰이 많이 없던 때라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메모를 할 때 유용했으니까요. 태국 바닷가에 누워 있던 어느 날 너무 심심해서 포스트잇에 그림을 그렸는데 함께 있던 아내가 재밌다고 칭찬하더군요.” 그렇게 포스트잇 그림이 시작됐고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들, 퇴근 후 아내와 나눈 대화 등 하루의 일상이 모였다. 휴대는 좋은데 그만큼 잘 없어지는 포스트잇 그림을 아카이빙 하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했고, 지금은 인스타그램(@post_it_diary)에도 꾸준히 그림을 올리고 있다. “하루 중 재밌었던 일을 기억했다가 그림을 그리다 보니 소재거리를 찾기 위해 주변을 관찰하게 됐어요.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던 어느 날 알바 직원의 ‘우리는 월화수목금금금만 있군요’라는 말에 다 같이 박장대소했던 기억, 안장을 잡았던 손을 놓아도 아이가 혼자 자전거를 밀고 나갈 때 뿌듯했던 아빠의 심정…이런 그림들에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공감하는 걸 보면서 행복은 우리 주변에 파편처럼 널려 있구나 생각했죠. 승진을 하고, 큰 프로젝트를 따는 것도 좋지만 이런 소소한 일상이 행복이라는 걸 알게 된 게 그림을 그리면서 생긴 삶의 변화죠.” TIP: ‘그림을 잘 그린다’의 반대말은 ‘그림을 그린다’이다. 처음부터 잘 그릴 순 없다. 생각처럼 그림이 안 그려지면 나는 꼼수도 쓴다. 예를 들어 ‘예쁜 사과’를 그리고 싶은데 잘 안 되면, 동그라미에 꼭지 하나 그리고 화살표를 하나 붙여 ‘예쁜 사과’라고 쓴다. 어차피 보는 사람마다 ‘예쁜 사과’에 대한 생각은 다르니까. 사과가 사과로 보이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보여주고 그들의 응원을 얻어라. 계속 그릴 수 있는 힘이 된다. 어른이의 그림일기, 조성익 홍익대 건축과 교수 조성익 교수의 그림들. 자신과 닮은 캐릭터를 등장시켜 공감대를 높인 그는 건축 여행, 공간 일기, 연말 카드 등을 그린다.​ 본지에 ‘인생공간’을 연재하고 있는 조성익 홍익대 건축과 교수도 혼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의 일러스트는 건축 전문가나 건축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어렵게 생각되는 건축 이야기를 편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공감대를 더 키우기 위해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을 보면서 자신을 똑 닮은 캐릭터도 만들었다. “요즘도 저는 매일 그림일기를 씁니다. 언젠가 아침부터 세어보니 40분에 한 가지씩 일을 처리하더군요. 저녁에 생각해 보면 하나도 기억이 안 날수밖에요. 초등학교 때는 그림일기를 그렸죠. 오늘 하루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그리고, 짧은 글을 쓰고. 그때는 적어도 하루 중 한 가지 일은 정확히 기억했죠. 기억할 것이 더 많은 어른이 되고는 그림일기의 순기능을 잊은 거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사진을 찍어두면 모든 걸 기억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죠.” 조 교수는 매일 새벽 5시30분에 그림을 그리는 건축가 스티븐 홀의 ‘상향식 사고’ 이론을 들려줬다. “머리로 생각해서 그리는 게 ‘하향식 사고’라면, 손으로 뭘 먼저 그리고 그걸 갖고 머리로 생각하는 게 ‘상향식 사고’에요. 예를 들어 지금 있는 식당을 집에 가서 묘사해 보려면 생각나는 게 별로 없어요.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회색 테이블 하나, 냉장고 속 뼈만 남은 민어를 그려두면 이 공간에 대한 글을 쓸 때 첫 문장을 ‘다 해체된 뼈만 남은 민어가 냉장고에 왜 걸려 있을까’로 시작할 수 있고,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죠.” TIP: AI에게 글도 사진도 밀리는 시대에 나만 그릴 수 있는, 의도하지 않은 아마추어리즘은 오히려 오래 갈 것이다. 잘 그릴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나만이 그릴 수 있는 정체성이다.​하루가 존재했다는 기억,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 허명회 교수의 그림들. 버려지는 달력이 아까워 그림을 그린다는 수학자의 숫자 사랑에 미소가 번진다. 한국 근현대 조각사에 독자적 위치를 구축한 조각가 권진규가 허명회 교수의 외삼촌이다. 외삼촌의 아틀리에가 놀이터였던 그는 경기중학교 시절 미술반에 들어가 전공을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 후 관심이 수학으로 옮겨갔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그래요. 오래 쳐다보고, 생각하고, 어떻게 풀어갈지 구상하고. 제게는 수학문제가 그랬어요.(웃음) ‘오래 보면 예쁘다’고 수학도 오래 생각하면 참된 것이 보이면서 본질적인 아름다움이 발견되거든요. 미술도 수학도 다 아름다워 결국 수학을 선택했지만 그 결정에는 후회 없어요.” 고3때 스스로 세상을 떠난 외삼촌의 죽음이 트라우마로 남아 60세까지는 한 장의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는 그는 65세 정년퇴직 후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오늘 하루가 나에게 존재했다는 것을 기록하는 거예요.” 인스타그램(@huh4200)에 매일 꾸준히 그림을 올리지만 글은 전혀 없다. “언어보다는 숫자가 우선한 인생이어서 글로 뭘 적는 게 어색하고 어렵더라고요.”(웃음) 노 수학자는 수줍게 고백했지만, 그의 그림은 의외로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까치·닭·까마귀 같은 새, 고양이, 말, 뱀 등을 자주 그리는데 그 이유가 ‘생각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란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궁금해요.(웃음) 그림 속 여백에서 그들의 말을 찾으려고 노력하죠.” 종이 질이 좋은 책상 달력이 버려지는 게 아까워 자주 사용한다는 수학자의 숫자 사랑에 새삼 웃음이 났다. 그는 차곡차곡 쌓은 그림들을 훗날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쓸 계획이란다. “죽 쌓아 놓은 그림들 보면서 ‘저이는 이 그림을 그렸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야기하다가 맘에 드는 건 한 장씩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제 빈소에 활력을 주고 싶은데, 아들(2022년 수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은 영 귀찮아할지도 모르겠네요.”(웃음) TIP: 모든 일에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된다. 노력과 적성은 상호작용 관계다. 1만 시간을 그리다 보면 그 과정에서 적성이 생기고, 적성도 꾸준한 연습 없이는 개발될 수 없다. 밤 골목을 더 잘 그리기 위해, 오재철 회사원회사원 오재철씨의 그림들. 나무는 학원에 다니기 전, 빛의 대비가 강한 거리와 밤 골목은 학원에 다닌 후 그린 것이다.​평범한 회사원 오재철씨는 지난 9개월간 펜화를 배우러 다녔다. 그리고 싶은 것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유튜브도 꽤 봤는데, 역시 피드백이 없으니까 진전이 더디더라고요.” 시작은 ‘어반 스케치(Urban Sketch)’였다. 도시나 여행지, 또는 일상 풍경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끼며 그리는 그림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거리·건물·카페·골목 등의 장면을 기록하고 싶었고, 관심을 가질수록 오씨의 관심은 명확해졌다. “제가 진짜 그리고 싶은 것은 을지로·청계천·종로의 밤 골목 풍경이에요. 빛의 대비가 명확해서 그림 자체로도 인상적이고, 저의 개인적인 기록으로도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거든요. 좋은 사람들과 술을 마셨는데 그날 비가 왔고, 처마 밑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 하늘을 보니 빗물에 젖은 간판이 환하게 빛났고. 사진보다는 그림이 그날의 바람·소리·냄새까지 진하게 전해지더라고요.” TIP: 내가 그리고 싶은 게 확실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라. 제대로 배우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그림을 그리기가 훨씬 쉬워진다. - 서정민 중앙일보 기자 ​큐레이션, 경험을 기획하는 시대 ​2​1세기 문화산업을 움직이는 핵심어 가운데 하나는 ‘경험’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소유했는가 못지않게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가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낸다. 기업은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설계하고, 도시는 머물고 싶은 장소를 조성하며, 공연·관광·유통 산업은 기억에 남는 체험을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를 넘어 경험 자체가 경제적 가치를 갖는 경험 경제가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술관 역시 이러한 변화 속에서 더 이상 작품만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관객의 경험을 기획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술관은 작품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전시하는 기관이었다. 큐레이터의 역할도 미술사적 담론과 맥락 속에서 작품을 선별하고 배치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큐레이션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관람 경험까지 설계한다. 전시 기획이 작품의 배열을 넘어 관람객의 동선과 감각, 기억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물론, 예술에서 경험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회화 앞에 오래 머무는 일도, 조각 주위를 걸으며 형태를 감각하는 일도 모두 미적 경험이다. 달라진 것은 경험의 존재가 아니라 위상이다. 이제 경험은 작품을 감상하는 미적 차원을 넘어 공간과 시간 속에서 전시를 읽고 관계를 맺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장소성과 역사성을 강조하는 전시가 늘어나면서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했다. 2000년부터 시작된 런던 테이트 모던의 터빈 홀 프로젝트는 화력발전소였던 거대한 산업 공간을 예술적 경험으로 전환한 대표적 사례다. 올라퍼 엘리아슨과 레이철 화이트리드, 카르스텐 횔러, 도리스 살세도, 아이웨이웨이 등의 작업은 공간 전체를 작품의 배경이자 관람 경험의 핵심 요소로 새롭게 해석했다. 이러한 흐름은 국제비엔날레의 확산과 함께 더욱 뚜렷해졌다. 장소특정적 미술과 대규모 설치, 영상 작업은 화이트 큐브를 넘어 폐공장과 항만, 역사적 건축물, 도시 공간으로 전시의 무대를 넓혀 갔다. 베니스비엔날레와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는 도시 곳곳을 전시장으로 활용하며 장소와 도시의 역사적 맥락을 전시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공간을 걷고 시간을 통과하며 도시를 몸으로 경험하는 일 자체가 전시의 일부가 된 것이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도 부산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옛 선박 수리창고를 개조한 전시 공간 ‘스페이스 원지’와 부산남고 부지를 활용해 도시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적극 반영할 예정이다. 이러한 변화는 전시 공간의 물리적 확장에만 그치지 않았다. 몰입형 미디어 전시의 증가는 전시를 구성하는 시간과 감각의 방식까지 바꾸어 놓았다. 영상·사운드·퍼포먼스 같은 시간 기반 형식은 이제 전시의 부수적 요소가 아니라 동시대 전시를 구성하는 핵심 언어가 되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몰입의 가능성을 더욱 넓혔다. 관객은 더 이상 벽에 걸린 작품만 감상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전시 공간을 통과하며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었다. 좋은 전시는 작품을 대신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관객이 만나는 관계의 조건을 설계하는 일이다. 작품의 의미는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해석과 참여 속에서 완성된다. 기업이 사용자 경험을 통해 편리함과 만족을 높인다면, 미술관과 비엔날레의 큐레이션은 질문과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미적 경험을 기획해야 한다. 전자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는 방식에 가깝다. 오늘날 전시는 시청각을 넘어 촉각과 후각 등 다양한 감각을 적극 활용하며 스펙터클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몰입과 강렬한 체험이 온전한 ‘미적 경험’(존 듀이)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감각적 자극이 작품의 사유를 압도할 때 전시는 오래 기억되는 예술보다 순간적으로 소비되는 이벤트에 머물 수 있다. 전시의 경쟁력은 흥행과 이벤트가 아니라 역사와 사회를 성찰하게 하는 공공적 가치에 있다. 결국 큐레이션은 작품을 배열하는 기술을 넘어 관객의 미적 경험을 이끌어내는 문화적 실천이 되어야 한다. - 이준 미술비평가·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인간·식물·AI가 풀어낸‘詩의 하모니’ ​길​이라는 글자 속에는 길의 모양이 들어 있다. ‘ㄱ’의 꺾인 길, ‘ㅣ’의 곧은 길, ‘ㄹ’의 꼬불꼬불한 길. 이렇게 완벽한 이미지를 품은 글자가 있을까. ‘ㄱ’의 꺾임은 좌절 같고, ‘ㄹ’형의 구불구불한 길은 설렘과 망설임을 함께 품고 있다. 이 굽은 길의 느린 속도는 효율성과는 무관해도 우리 몸의 감각을 가장 많이 일깨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지향해온 길은 곧은 길이었다. 호쾌하게 뻗은 길의 속도감과 안정감을 여태 추구해 왔다. 그런데 속도를 추구하는 마음이 더 커지면서 언젠가부터 ‘길’이라는 말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길보다는 더 속도감 있고 인공적인 ‘도로’가 많아졌다. 내비게이션은 점점 정교해지고, 사람들은 지도를 더듬으며 헤맬 필요가 없어졌다. 산길, 골목길, 오솔길 같은 낱말은 옛말처럼 느껴지고, 이 낱말 속에 있던 미궁의 이미지도 희미해진다. 생각해 보면 예전의 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었다. 길에는 떠남과 귀환이 있었고, 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 묻어 있었다. 때로는 헤매게도 했지만 그 우회가 인간의 이야기를 만들고 문학이 되기도 했다.하지만 지금 우리는 길보다 링크를 더 자주 누른다. 물리적 이동의 시대가 지나가고 우리는 접속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삶은 하나의 선형적인 서사보다, 감각과 정보가 동시에 스며드는 네트워크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최근 2026. 5. 서울교대 샘미술관에서 열린 ‘인간?식물 ? 가설의 정원’이라는 전시회와 이 전시의 오프닝 낭독회 ‘식물-되기의 언어’는 이런 시대감각을 매우 선명하게 드러낸 행사였다. 이 전시에는 김혜성, 김훈철, 윤정원, 이호영, 정규리의 다섯 작가가 참여했다. 천, 쌀, 도예, 식물, 영상을 오브제로 삼아 구성한 정원은 현대적 감각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공간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길처럼 관객을 특정한 목적지로 데려가는 게 아니라, 기억과 시간과 생명의 층위가 함께 움직이는 가설의 정원이었다. 이번 낭독회도 ‘가설의 정원’이라는 공간을 체험하기에 충분했다. 나와 김서치, 이형초 시인이 서로의 시를 쪼개 언어의 씨앗을 만들고, 관람객들에게 한 행씩 낭독하게 했다. 동시에 인공지능(AI)은 세 사람의 시를 혼합해 또 다른 한 편의 시를 생성했다. AI 시는 작위적인 언어놀이처럼 과장되거나 어색한 부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놀라울 만큼 일관된 흐름으로, 완성도 있게 시를 합성해 내어 우리를 놀라게 했다. 무엇보다 이 행사에서 인간의 언어와 기계의 언어가 하나의 무대 위에서 협연하는 느낌이 들어 신선했다. 여기에 또 하나 더해진 것이 관람객의 목소리로 낭독하는 시의 맛이다. 정원에 뿌리내린 한 그루의 나무가 처음 듣는 새의 울음에 귀 기울이듯, 시를 읽는 낯선 목소리의 떨림을 세밀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시는 종이 위에 있을 때와 목소리로 읽힐 때 전혀 다른 감각을 준다. 낭독에는 그 사람만의 숨결과 떨림, 머뭇거림이 함께 실린다. 어떤 구절은 발화되는 순간 공감의 전율이 오기도 하고, 어떤 침묵은 문장보다 더 오래 긴장감으로 남는다. 낭독을 하다 보면 더 절실히 느껴지는 것이 있다. 시는 단순히 ‘만들어진 언어’가 아니라, 한 존재가 자기 삶을 통과시킨 흔적이라는 점이다. 이 지점은 AI 시가 건드릴 수 없는 부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공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처럼 느껴진다. 정원은 길과 다르다. 길이 출발과 도착을 전제한다면, 정원은 증식과 공존을 전제한다. 식물은 목적지를 향해 걷지 않는다. 대신 빛과 습도, 균열의 방향으로 몸을 조금씩 기울이며 자란다. 이번 낭독회를 통해 한 가지 질문이 선명해졌다. 시에 있어서 인간과 AI가 앞으로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이 행사에서 분명해진 것은 인간과 AI가 서로를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생태 안에서 얽히고 반사하며 새로운 감각을 함께 생성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어쩌면 앞으로의 예술은 더 이상 길의 형식을 따르지 않을지 모른다. 정답을 향한 직진보다 서로의 감각을 교차시키는 일이 더 중요해질지 모른다. - 천수호 시인​한국 미술: 19세기부터 현재까지한국 미술의 주요한 시기에 대한 연구서저자 샬롯 홀릭, 264쪽, 60달러, 런던, 리액션 북스 (2017)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19세기말에서 21세기 초까지 100년 정도에 걸친 한국 미술을 “완벽하게, 백과사전처럼 읽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대신에 한국사에서 격동의 시기였던 이 기간 동안 이정표가 될 만한 중요한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전체적으로 홀릭은 미술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에 어떻게 관계하는지 파고든다. 첫 장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몇 년을 조명하는데 이때 한국은 근대 국가로 변모하고 미술은 점점 더 정치화된다. 두 번째 장은 식민시기에 관한 것으로 이때 미술에 대한 이해가 엘리트의 독점물에서 모두에게 속한 것으로 변한다. 세 번째 장은 2차 대전 후 북한에서 김일성 이데올로기에 의해 추진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미술이 발전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네 번째 장은 앞 장과 병행해서 이 시기 남한의 경우를 다루는데 남한에서는 추상 미술이 대두한다. 다섯 번째 장에서는 1970년대 민중 미술이 소개된다. 마지막 장인 여섯 번째 장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예술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 한국 예술가들의 변화를 밝힌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한국 미술사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한 시기에 대한 입문서로서 환영할 만하다. 또한 영어로 쓰인 드문 저서로도 인정을 받을 만 하다. - 찰스 라슈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예술을 품은 월드컵 유니폼 ​전​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기간 (2026. 6.) 이지만, 사실 필자는 축구를 잘 모른다. 정말 유명한 몇몇 선수만 알아보고, 어느 나라가 강팀인지도 헷갈린다. 그래도 서로 찢어져 싸우기 바쁘던 나라가 90분간 하나 돼 대표팀을 응원하는 순간은 좋다. 카보베르데나 퀴라소처럼 이름조차 생소한 약체가 강호를 상대로 선전하는 것도 짜릿하고, 전쟁과 에볼라로 뒤숭숭한 이란과 콩고를 응원할 그 나라 국민들의 간절함은 상상만 해도 벅차다. '축알못'인 필자에게는 경기 그 자체보다 선수들이 입는 유니폼을 보는 재미가 더 크다. 예전에는 대체로 각국의 국기나 상징색을 유니폼에 반영하는 수준이었다. 흑백 TV로 보거나 색맹도 볼 수 있게 무작위로 뽑힌 홈팀은 주로 짙은 색 유니폼을, 원정팀은 옅은 색 유니폼을 입어 선수 구별을 쉽게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반영한 벨기에 유니폼.르네 마그리트의 '분홍빛 방울, 찢어진 하늘'. 그런데 이번 북중미월드컵에 등장하는 각국 유니폼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그 자체로 작은 박물관이 될 정도로 모두가 신경을 쓴 것 같다. 스페인 원정 유니폼은 고대 필사본 장식에서 따온 덩굴 문양을, 멕시코는 아즈텍 문명의 '태양의 돌'을 가슴에 품었다. 노르웨이는 바이킹 문양을 국기의 십자 안에, 아르헨티나 원정 유니폼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 예술 '필레테아도'의 넝쿨을 짙은 남색 위에 새겨 넣었다. 우즈베키스탄은 두 가지 유니폼 모두 전통 건축에 사용된 모자이크 문양을 색만 바꿔 보여주고, 모로코 원정 유니폼도 전통 젤리주 타일 패턴을, 세네갈 원정 유니폼은 다카르 시민들이 밤낮없이 타고 다니는 '카 라피드'버스에 흔히 보이는 문양을 셔츠에 옮겼다. 그저 빨갛기만 하던 우리나라 홈 유니폼도 '발톱의 역습'이란 캠페인처럼 호랑이 같은 기세로 싸우자는 마음으로 검은 호랑이 문양이 들어갔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본선 진출 이후 처음으로 흰색이 아닌 보라색으로 등장한 대한민국 원정 유니폼도 화제였다. 너무 예쁜 꽃무늬에 놀랐으나, 피고 지고 또 피는 무궁화임을 알아챈 순간 화려함보다 오래 견디는 아름다움을 택하겠다는 다짐이 느껴져서 더 좋았다. 미술 관계자에게 가장 눈에 띄는 유니폼은 자국 미술가를 '입어 버린'벨기에의 원정 유니폼이다. 유럽의 붉은 악마인 벨기에의 이번 원정 유니폼은 하늘색 바탕에 흰색과 핑크색 공이 부유하는 것 같기도, 경기장의 라인들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벨기에가 자랑하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1930년 작 '분홍빛 방울, 찢어진 하늘'에 사용된 색상과 패턴이 유니폼에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예쁜 하늘의 왼쪽 화면과 대비돼, 오른쪽에는 동그란 방울 여러 개가 불그스름한 배경 위에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화면을 통해 일상에서 흔히 보는 사물을 전혀 다른 맥락에 놓는 것만으로도 진짜 현실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한 그의 중요한 작품이다. 유니폼 깃 안쪽에 소중하게 적힌 문구인 '이것은 유니폼이 아니다(Ceci n'est pas un maillot)'는 마그리트에 대한 오마주임을 더욱 확실시한다. 1929년 마그리트는 정성껏 그린 파이프 그림 아래쪽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고 적어 관람자를 당황시켰다. 생각해보면 당연히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라는 진리를 알려준 그 작품의 제목은 '이미지의 배반'으로, 우리의 인식 체계 자체를 자문해 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초현실주의로 분류되는 작가들이 주로 충격적인 작품을 만들 때 익숙한 사물을 아주 조금 어긋나게 놓는 조용한 방식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던 그가 세상에서 가장 떠들썩한 무대인 축구장에, 그것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옷으로 나타난 것이다. 굳이 미술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국가대표 유니폼은 그냥 유니폼이 아니다. 한 나라를 대표해 그라운드에 서는 선수에게 그 셔츠는 더없는 영광이자 무거운 책임이고, 몸을 가리는 천이 아니라 전장에 나선 투사의 갑옷이다. 다만 그 갑옷이 강철이 아닌 온 국민의 염원으로 만들어질 뿐이다. 그렇다. 이것은 유니폼이 아니다. 한 나라가 90분 동안 온 마음으로 입어보는, 가장 뜨겁게 응축된 자기 자신인 것이다. - 이지현 OCI미술관장(미술사)​나직한 ‘동네 미술관’의 반전​굉음·풍광에 정신이 번쩍…도쿄 쇼토미술관과 정릉 최만린미술관도쿄 시부야구에 있는 쇼토미술관. 친근한 외부와 달리 폭포 소리가 우렁찬 중정을 둔 내부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친근한 외부와 달리 폭포 소리가 우렁찬 중정을 둔 내부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사진 쇼토미술관] 거​친 돌로 둘러싸인 작은 방. 공간에 깔린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쯤, 다음 문을 열었다. 순간 하늘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빛. 더 놀란 것은 갑자기 귀를 울리는 폭포 같은 물소리였다. 정신이 번쩍 든다. 참선 중 깜빡 졸다가 죽비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랄까. 이곳은 일본 도쿄의 쇼토미술관이다. 하루 종일 지루한 회의에 시달린 뒤, 밋밋한 퇴근길을 뒤흔들 충격파가 필요하다면 여기서 죽비를 한 대 맞고 볼 일이다. 이 장엄한 건축은 시부야 인근, 쇼토의 주택가 한가운데 숨어 있다. 과거 한국 드라마를 보면 “네, 평창동입니다”라고 전화를 받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데, 어느 도시에나 이름 자체가 거주자의 지위를 대변하는 부촌이 있기 마련이다. 도쿄에서는 쇼토가 바로 그런 동네다.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갈 일이 없는 주거지 한가운데, 왜 이런 묵직한 공공 미술관이 들어선 것일까. 가벼운 만남의 도시에 사색 권하는 공간 이 건물을 온전히 감상하려면 쇼토의 주택가 골목에서 걸음을 시작해야 한다. 굳게 담장을 두른 저택들 사이를 걷다 보면 홀로 슬쩍 물러나 두 팔을 벌린 건물이 멀리 보인다. 묵직한 돌을 붙인 외벽과 수직으로 뻗어 올린 입구 때문에 첫 인상은 엄숙한 교회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면 둥글게 휘어진 벽이 다정하게 초대를 건네는 건물이다. 초대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서면 앞서 말한 대로 전혀 다른 차원의 감각이 시작된다. 하늘로 뚫린 거대한 타원형 중정(中庭)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허리 잘록한 다리, 그곳을 쩌렁쩌렁 울리는 폭포 같은 물소리가 이 경험의 핵심이다. 흥미로운 점은 소리의 진원지인 연못을 지하 깊숙한 곳에 내려놓아 시야에 온전히 들어오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시각을 제한한 탓에 한껏 예민해진 청각이 공간을 소리로만 감각하게 만든다. 건물 전체를 거대한 소리의 확성기로 설계한 셈이다.[일러스트 조성익] 빛과 소리를 뒤로 하고 다음 공간으로 들어서면, 발밑으로 사람들이 오가며 미술품을 감상하는 전시실이 내려다보인다. 타인의 관람을 굽어보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종의 ‘프리뷰(Preview)’ 공간이다. 어둠과 빛, 굉음과 고요, 묵상과 관람을 능수능란하게 교차시키는 이 극적인 전개는 도심 주택가에서 겪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낯선 경험이다. 당초 시부야구는 도서관과 체육관을 품은 대중적인 마을 회관을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재계 인사들이 모여 사는 동네 특성상, 낯선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설을 꺼리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결국 고심 끝에 소음 없이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미술관을 짓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까다로운 프로젝트를 맡은 이는 일본 건축계의 이단아, 당시 75세의 거장 시라이 세이이치였다. 설계 과정에는 뚫고 나가야 할 현실적 제약이 수두룩했다. 조용한 주택가이다 보니 건물을 높이 올릴 수도 없었고, 이웃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외벽에 창문을 함부로 낼 수도 없었다. 그러나 시라이는 이 한계를 오히려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극대화하는 무기로 삼았다. 그는 위로 솟는 대신 땅을 깊숙이 파고들어 지하 2층까지 공간을 확보했다. 외부로 창을 낼 수 없으니 건물 한가운데 거대한 타원형 구멍을 내고, 어떠한 전시 기능도 없이 오직 빛과 굉음 같은 물소리만을 채워 넣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떠들썩하게 술 마시고 사람 만나는 시부야 한복판이다. 얄팍한 소비, 가벼운 만남이 넘치는 번잡한 도시 한가운데서, 미술관은 육중한 재료와 짙은 어둠으로 방문객에게 사색을 권한다. 시라이 세이이치는 ‘철학의 건축가’로 불린다. 독일에서 근세 철학을 공부한 그는 1950~60년대 일본 건축계를 휩쓸던 미래 지향적인 유행에 무심했다. 대신 단순한 기하학과 어두운 공간을 통해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그의 특기다. 놀라운 것은 이 묵직한 건축을 동네 사람들은 지극히 일상적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방문했던 3월, 마침 지역 관련자들의 미술 공모전이 열리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을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10대 어린이부터 80대 노인까지 저마다의 솜씨를 뽐내는 전시장은 그 자체로 이 마을의 자화상이었다. 한켠에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오랜만에 친구들을 미술관으로 초대해 자신의 작품 해설을 해주고 있는 장면이 보기에도 흐뭇했다. 폭포 같은 굉음을 내던 연못 옆 지하에서는 종종 강연과 미술 교실이 열린다. 죽비 같던 공간이 동네 사랑방으로 쓰이는 행복한 풍경. 쇼토미술관은 철학적인 건축에 주민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동네 미술관의 이상적인 미덕을 보여준다. 이제 시선을 우리 동네로 돌려보자. 주택가에 숨어 있는 공공 미술관 중 가장 사랑스러운 인생 공간을 꼽으라면 단연 서울 성북구 정릉의 ‘최만린미술관’이다. 한국 1세대 추상 조각가 최만린의 낡은 자택 겸 작업실을 고쳐 지은 곳이다. 이 미술관을 대표하는 명장면이 있다. 코너를 시원하게 비워 낸 1층 창가 앞에 서보라. 실내에 놓인 조각과 창밖의 작은 정원, 그리고 담장 너머 동네의 풍경이 하나의 시야에 겹쳐 들어온다. ‘동네 골목에 놓인, 주택에 들어선, 조각가의 공간’. 미술관이 품은 이 세 가지 층위를 한눈에 보여주는 완벽한 구도라, 카메라를 꺼내어 한 컷에 담아두었다. 서울 성북구 정릉에 있는 최만린미술관. 코너 통창으로 동네 풍경을 끌어들였다. [사진 조성익] 이곳은 조각품만 쓱 훑어보고 나갈 전시장이 아니다. 작가가 평생 흙을 만지며 생활하던 곳이기에 삶의 체취를 발견하는 뭉클함이 있다. 한쪽 방에는 작가가 직접 모아 만든 130여 권의 스크랩북이 꽂혀 있다. 50여 년간 영수증 하나까지 챙긴 철두철미함, 그리고 타국의 낯선 여행지에서 아내에게 띄운 엽서에 담긴 다정함. 매사에 꼼꼼하고 세심하게 마음을 썼던 ‘인간 최만린’의 온기가 다가온다. 우연히 마주친 김보라 관장은 미술관이 문을 열게 된 흥미로운 배경을 들려주었다. 원래 정릉 일대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문화 마을이었으나 어느새 다세대 주택과 고시원이 그 자리를 밀어내면서 낮에도 인적이 드문 적막한 동네로 변해가고 있었다. 다행히 허물어질 뻔한 거장의 자택을 지켜내어 이 미술관을 열자 조용하던 골목에 다시 예술가와 건축가,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빌라·고시원 사이동네 거점으로 거듭나2020년 자신의 오랜 작업실이 동네 주민을 위한 공공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지켜본 후, 불과 석 달 뒤 거장 최만린은 평안히 세상을 떠났다. 낡은 주택을 동네의 거점으로 탈바꿈시킨 이 프로젝트로 성북구청과 설계자 이은경 소장은 ‘대한민국 공공건축상’을 수상했다. 새봄을 맞아 문을 연 미술관은 개관 첫날, 원로 예술가들을 가장 먼저 초청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당시를 회상하다가 가까운 식당으로 서로 팔을 걸고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주거지란 원래 사는 사람이 아니면 굳이 찾아갈 일이 없는 곳이다. 굳게 닫힌 남의 아파트 단지가 그렇다. 한편 반대쪽 극단에는 주거지 고유의 정취를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한 동네가 있다. 유행하는 카페와 맛집이 점령해 버린 해방촌이나 연남동 일대가 대표적이다. 철저히 배타적이거나 통째로 소비되거나. 도시 주거지가 겪는 이 두 가지 극단적인 풍경 사이에서, 도쿄의 쇼토와 서울의 정릉은 훌륭한 대안을 보여준다. 동네에 자리한 공공 미술관 하나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한 힘으로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축구 선수는 그라운드를 넓게 쓴다. 도시를 살아가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낯선 동네까지 발걸음을 내디딜 이유가 생길 때, 우리는 비로소 이 거대한 도시를 넓고 다채롭게 쓰게 된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 모르는 동네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고 라일락이 핀 단독주택 골목을 찬찬히 눈에 담으며 우리는 타인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간다. 낯선 동네를 기꺼이 걷게 만드는 힘. 그것이 잘 만들어진 동네 미술관이 우리에게 주는 미덕이다. - 조성익 건축가. 홍익대 교수 ​작품으로 본 현대의 성물예수 얼굴 자리를 대신한 붓질공허한 세계에 의미 불어넣는 예술가헨니 알프탄의 2014년 유화 ‘아브라카다브라’. 얼굴 없는 이의 두 손이 회갈색 붓질이 남은 흰 천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뉴욕 핀란드문화원 / 한스 멤링이 1470년경 그린 ‘성녀 베로니카’. 성녀가 예수의 얼굴이 찍힌 천을 펼쳐 보인다. / 가브리엘 폰 막스의 ‘베라 아이콘’. 성녀의 모습 없이 예수의 얼굴이 찍힌 천만 표현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여​기 한 폭의 그림이 있다. 누군가 검은색 배경에 흰색 천을 두 손으로 들고 있다. 그 흰 천의 중앙에는 회갈색의 얼룩 같은 붓 터치가 있으니, 그림 안에 또 그림이 있는 셈이다. 핀란드의 화가 헨니 알프탄이 2014년에 그린 유화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다. ​대체 이 그림의 취지는 뭘까. 집요하게 극사실적으로 대상을 묘사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기상천외한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복합적인 구성이 있지도 않다. 그러나 이 평범해 보이는 그림은 2000년에 걸친 서양문명사를 집약한다. 서양미술사에 익숙한 사람은 ‘아브라카다브라’를 보는 순간, ‘베로니카의 베일(Veronica‘s Veil)’을 떠올리게 된다. 유럽의 대형 미술관에 가면 예수의 얼굴이 찍힌 천 그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한 그림의 제목은 대개 ‘베로니카의 베일’이거나 ‘베라 아이콘(Vera Icon·참다운 아이콘)’이다.​‘베라’는 ‘참’을 뜻하기도 하고, ‘베로니카’를 뜻하기도 한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가는데, 마침 길가에 있던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피와 땀이 흐르는 예수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러자 그 천에 예수의 얼굴이 그대로 찍히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후 ‘베로니카의 베일’은 성물(聖物)로 취급돼 대성당에 보관됐고, 환자의 병을 고치는 등 기적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비슷한 성물로는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천으로 알려진 ‘토리노의 수의’가 있다. ‘토리노의 수의’에도 예수의 몸 형상이 그대로 찍혀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베로니카의 베일’이나 ‘토리노의 수의’의 진위는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것이 진짜든 가짜든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그 같은 성물의 기원과 위력을 믿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기적을 기대하며 성물을 찾아왔기에 그 순례길에는 상업이 발달할 수 있었고, 상업이 발달했기에 도시가 유지됐다. 어떤 사물이 위력을 가진다는 생각은 성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심리적인 현상으로 간주되는 것들도 그 당시에는 사물의 위력으로 간주됐다. 예컨대 우울(멜랑콜리)도 오늘날에는 심리적 현상이지만, 옛날에는 흑담즙의 위력으로 여겨졌다. 이처럼 그 당시 사물은 위력과 의미로 충전돼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물들이 모여 세계를 만들었으니, 세계가 온통 주술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주술적 세계관으로부터 멀리 떠나왔다. 현대인에게 사물은 더 이상 의미와 위력으로 충전돼 있지 않다. 이제 사물이란 대개 그저 상품이다. 돈만 주면 살 수 있고, 좀 더 나은 상품이 등장하면 이내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는 영혼 없는 대상에 불과하다. 물론 아직도 성물의 힘을 믿는 가톨릭 신자들이 있겠지만, 그들조차도 성당을 나서면 자본주의가 관통하는 현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사람들이 의미와 위력으로 충전된 사물과 더불어 살아갔다면,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공허해진 사물과 함께 살아간다. 정치사상가 찰스 테일러에 따르면 세속화된 현대인은 신이나 주술에 대한 믿음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신을 믿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신을 믿을 때조차도 믿음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어떤 실존적 선택을 하는 일로 변했다. 세속화된 현대인은 의미가 이 세계에 깃들어 있다고 순진하게 믿을 수 없다. 의미는 이 세계에서 발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구성해야 하는 것으로 변했다. 사물이 의미있게 되려면, 인간이 스스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한다. 옛날에는 선과 악이 사물의 모습을 띠고 싸웠다. 악한 정령이 몸에 들어와 문제를 일으키면 성수라는 선한 사물을 사용해서 퇴마를 했고, 악마가 뱀이나 용이라는 사물의 형태로 나타나면 천사라는 또 다른 사물이 나타나서 물리쳐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은 초자연 미스터리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더 이상 현실에서 그런 것은 없다. 이 세계는 마침내 세속화된 것이다. 세속화되었다고 해서, 인간이 어떤 초세속적 의미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충일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은 이 공허한 세계를 공허한 채로 방치한 채 좀비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 의미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기에,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라도 의미를 찾아야 한다. 즉, 탈주술화를 넘어 재주술화가 필요하다. 현대의 예술가들이 바로 그러한 주술사들이다. 이 공허한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하기에, 그들은 현대의 제사장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프탄의 그림 제목이 ‘아브라카다브라’라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아브라카다브라’는 ‘수리수리마수리’처럼 마술 혹은 기적을 행하는 주문이다. 현대인을 새로운 의미망 속으로 초대하는 예술적 주문인 셈이다. 그 주문에 걸린 관객들은 이제 눈을 번쩍 뜨고 자신이 경배할 대상을 찾게 된다. 그러나 예수의 얼굴이라는 신성한 아이콘이 있던 자리는 이제 예술가의 붓질이 만든 작품이 대신한다. 이 작품을 경배하라,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의 성물일지니. 옛날에는 성녀 베로니카가 신성한 흔적이 찍힌 천을 들고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누가 그 천을 들고 있는가. 15세기 플랑드르 회화를 대표하는 한스 멤링의 ‘베라 아이콘’에는 성녀 베로니카가 함께 그려져 있고, 오스트리아의 화가 가브리엘 폰 막스의 ‘베라 아이콘’에는 예수의 얼굴이 찍힌 천만 등장한다. 이에 비해 알프탄은 누구의 손인지 맞혀 보라는 듯, 얼굴 없는 이의 손을 그려 넣었다. 그 손은 바로 현대의 주술사가 된 예술가의 손이다. 오늘날 예술가들은 공허한 사물을 예술품으로 변화시키는 마술사이고, 관객들은 자신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화석연료에 좌우되는 인류 문명​우​리나라에 대종상이 있고, 미국에 오스카상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세자르상이 있다. 매년 프랑스 영화계 최고의 영예로 수여되는 이 상의 트로피는 그 형태가 독특하다. 황금색이긴 하지만,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한 이 청동 덩어리는 누군가가 힘껏 짓눌러 만든 것처럼 보인다. 이 트로피를 디자인한 사람이 바로 이탈리아계 프랑스 조각가 세자르 발다치니인데, 트로피에 따라 영화제의 이름이 붙은 흥미로운 역사의 주인공이다. 이 유명한 세자르가 오랜 기간 천착한 주제가 '압축'이었기에 이 트로피의 거친 벽돌 같은 형태는 이미 영화제가 시작한 1976년 전부터 그의 고유한 스타일이었다.세자르 '노란색 뷰익'.여기 납작하게 눌린 거대한 노란색 철 덩어리 작품도 세자르의 1961년작 '노란색 뷰익'이다. 노란색 에나멜 도료와 녹슨 철, 크롬과 유리 파편이 뒤엉킨 표면으로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방불케 하는 색면을 보여주면서도, 살짝 보이는 로고 때문에 이 금속 덩어리가 미국산 자동차 뷰익이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세자르가 폐차장에서 산업용 유압 프레스로 금속을 압축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말이었다. 처음에는 고철 파편, 철사 뭉치, 공장 폐기물을 압축하면서 그 감춰진 밀도와 무게를 드러내 보이는 실험을 했는데, 무엇이 압축된 것인지를 알아볼 수 있을 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분명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세자르는 결국 자동차를 선택했다. 자동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인의 자유와 욕망과 지위가 응축된 오브제로서, 이를 압축하는 것은 소비문명 전체를 유압 프레스로 눌러버리는 행위와 같았다. 세자르는 만들고, 쓰고, 결국 버리는, 석유라는 화석연료로 달리는 산업문명의 끝없는 사이클을 하나의 덩어리로 응축시킨 것이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넘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세자르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당시보다 전 세계 자동차 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고, 인간의 활동이 지질학적 흔적을 남길 만큼 지구 자체를 바꿔놓아 인류세(Anthropocene)라는 단어까지 통용되는 시대에 접어든 지 오래됐다. 이런 변화의 요인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탄소퇴적층과 미세플라스틱이었는데, 화석을 태운 인간의 문명이, 스스로 화석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자르가 이런 자동차 압축 작업을 하던 1960년대 초도 인류세의 기점으로 지목된 시기와 엇비슷하게 겹친다. 당연히 그는 인류세라는 단어를 몰랐겠지만, 그 시대의 본질을 가장 먼저 시각적으로 제시한 셈이다. 수억 년 전 생명체가 땅속에서 압축되고 퇴적돼 만들어진 '화석'을 연료로 삼아 우리는 문명을 굴려왔다. 그리고 그 연소의 흔적이 다시 지층에 쌓이고 있다. 세자르는 화석연료로 달리던 자동차를 덩어리로 압축시키는 행위를 통해 태우고, 버리고, 눌리고, 굳는 우리 문명이 지구에 새기고 있는 순환의 고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기름값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화석연료가 원활히 수급되지 않으면 문명 자체가 멈춘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구조를 유지할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할 시간이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은 이제 환경론자의 이상이 아니라 문명의 안전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 됐다. 에너지 원천을 다변화하고 생산과 소비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진짜 전환이다. 미술은 종종 사회가 미처 언어화하지 못한 것을 먼저 시각적으로 제시해준다. 세자르는 이미 오래전에 화석을 태우는 문명이 결국 스스로 화석이 되리라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는 그것의 전위적 예술행위만 분석했을 뿐, 무분별한 소비사회에 대한 경고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연소한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층이 되고, 역사가 되고, 인류세라는 이름의 화석이 됐다. 다음 지층에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 선택은 과학자나 미술가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 이지현 OCI미술관장(미술사​예술가의 작업실, 워홀의 ‘팩토리’ 이후 ​지​난해 2025 국립현대미술관의 론 뮤익 전시에서 눈길을 끈 것은 익숙한 그의 작품보다 한편의 작업실 영상이었다. 제작에 몰입하게 만드는 작업실의 환경과 조각가의 탐구적 태도, 그리고 휴식 중 새와 교감하는 장면까지 인상 깊게 다가왔다. 작업실은 작품 이면에 놓인 작가적 삶의 흔적과 취향, 그리고 내면을 가식 없이 드러낸다. 큐레이터로서 오랜 시간 창작의 현장을 방문하며 확인한 것은 작가의 삶의 방식과 태도가 예술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이었다.론 뮤익 작업실 영상, 국립현대미술관 2025. [사진 이준] 많은 작가들에게 작업실은 자신만이 몰입할 수 있는 사유와 창작의 공간이자 작품의 보관창고이며, 이상을 실현하는 장소다. 제임스 홀은 『The Artist’s Studio: A Cultural History(예술가의 작업실: 문화사)』(2023)에서 작업실을 단순한 제작 공간이 아니라, 예술가의 신화와 현실이 모순적으로 교차하는 장소로 읽는다. 과거에는 천재의 영감이 깃드는 신화적 공간이자 고된 육체노동의 현장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작업실의 성격과 정체성이 다양하게 변형·확장·재구성되고 있다. 이 전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것은 1960년대 앤디 워홀이 자신의 작업실을 ‘스튜디오’가 아니라 ‘팩토리’라 부른 순간이다. 그에게 예술은 더 이상 작가의 손작업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반복과 복제, 협업과 유통이 창작의 일부가 되었고, 예술가는 장인이 아니라 생산을 총괄하는 감독이자 기획자가 되었다. 워홀 이후 제프 쿤스와 데미안 허스트, 그리고 올라퍼 엘리아슨의 스튜디오를 더 이상 ‘개인 작업실’이라고 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때 작업실은 예술가 혼자만의 은신처가 아니라, 기획과 제작은 물론 협업과 공론, 토론이 함께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변화한다. 백남준의 스튜디오는 이 변화를 또 다른 방식으로 증명했다. 한때 빈티지한 골동품과 전자부품이 뒤섞인 공방처럼 보이던 그의 작업실은, 2000년 구겐하임 회고전을 앞두고 방문했을 때 레이저 아트 같은 첨단기술을 실험하는 테스트베드로 확장되어 있었다. 그는 휠체어에 앉은 몸으로도 신문과 TV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며 시시각각 들어오는 뉴스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미지와 정보, 기술과 매체가 교차하는 작업공간은 단순한 제작 현장이 아니었다. 그에게 작업실은 공방이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실험하는 장치였다. 오늘날 성공한 작가들이 선택하는 단독 스튜디오나 지식산업단지형 작업실은 점차 최적화된 시스템을 닮아가고 있다. 연구와 제작, 보존과 아카이빙, 전시는 물론 높은 천장과 넓은 출입구, 장비 이동과 물류 동선까지 고려하여 국제적 수준에 맞춰 운영된다. 예술은 여전히 사유에서 출발하지만, 그 실행은 점점 제작 시스템과 유통, 효율성의 논리에 의해 재편된다. 작업실의 변화된 풍경은 예술가의 삶의 방식뿐만 아니라, 예술이 어떤 조건에서 생산되고 관리되며 유통되는지를 함께 읽게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예술가에게 작업실은 여전히 생존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임대료와 관리비, 장비와 재료비, 불규칙한 수입 사이에서 작업실은 로망이 아니라 버텨야 할 현장이다. 젊은 세대 작가들은 하나의 스튜디오에 정착하지 않고 국내외 레지던시를 오가며 유목주의처럼 이동하는 삶을 선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작업실은 더 이상 고정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교류와 협업, 현장 경험과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임시 거점에 가깝다. 작은 작업실은 사유의 밀도를 말해주지만, 거대한 제작 단지는 예술이 산업과 자본, 시장의 논리 속에 깊숙이 편입되었음을 증언한다. 이동하는 스튜디오는 동시대 예술이 얼마나 유연하게 조건을 바꾸며 진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작업실은 ‘장소’라기보다 물질과 기술, 관계가 교류하는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다. 팩토리에서 플랫폼 시대로의 전환은 작업의 방식뿐 아니라,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조건 자체의 변화를 가리킨다. 비평에 있어서도 작업의 결과보다는 과정이,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어떤 방식과 태도, 어떤 윤리 속에서 작업이 이루어졌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작업실은 또 하나의 전환에 서 있다. - 이준 미술비평가·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 ​예술품으로 걸린 상업 포스터 ​거리의 예술에서 박물관의 걸작으로일러스트레이터 알폰스 무하 홍​보를 위해 제작한 포스터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요즘은 포스터에 담은 그림도 인기가 꽤 많다. 19세기 말에도 비슷했다. 파리 거리에는 화려한 포스터가 빼곡했다. 극장이나 카페 그리고 샴페인과 담배를 홍보하는 이미지가 벽에 가득했다. 포스터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세련된 디자인과 인상적인 이미지로 서로 경쟁했다. 파리지앵은 그런 포스터를 탐내기도 했다.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스터를 몰래 떼어서 집에 걸기도 했다. 이 현상에 이름까지 붙었다. 바로 ‘포스터 수집 열풍’이라는 뜻의 ‘아피쇼마니(Affichomanie)’이다. 광고를 실은 종이를 예술품으로 여기고 소장하는 일이 유행한 것이다. 삽화가이자 상업 이미지 제작자인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도 점차 늘어났다. 신문과 잡지 산업이 급격히 성장한 덕분이었다.1887년 잡지 『오늘의 인물들』에 게재된 쥘 세레의 에르네스트 맹드롱 캐리커처, Affichomanie 시각화 / 알폰스 무하 - 위키피디아​일러스트레이션 열풍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바로 알폰스 무하(Alfons Mucha, 1860~1939)이다. 그는 체코 출신 일러스트레이터이다. 프라하의 판스카 거리(P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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